[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구독자 70만을 보유한 크리에이터 유나(박주현 분)는 지친 하루를 보낸 뒤 차안에서 대리기사를 기다렸다.

잠시 눈을 붙였던 그가 눈을 떠보니 손발이 묶인 채 폐쇄된 공간에 감금돼 있었다. 어리둥절함도 잠시, 차 트렁크에 갖혔다는 걸 알아챈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유나를 트렁크에 가둔 범인이다. 범인은 한 시간 안에 6억5000만원을 벌라고 다그쳤다.

12일 개봉을 앞둔 영화 ‘드라이브’는 납치돼 트렁크에 갇힌 유나가 1시간 라이브 방송 동안 6억5000만원을 벌어야만 한다는 범인의 뜻대로 방송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범인이 왜 이런 무모한 요구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유나는 살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카체이싱 중심으로 사건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는데 전개가 빨라 쉴 틈이 없다.

전작 ‘특송’(2022)을 통해 카체이싱 연출에 일가견을 보인 박동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사건이 시작되는15분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쭉 밀어붙이는 연출자의 힘이 눈에 띈다.

크고 작은 사건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중간중간 카체이싱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후진 역주행을 하면서 달려오는 차들을 요리조리 피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또 라이브 방송을 오랫동안 연구한 듯 유나가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과정과 댓글창에 나오는 글들이 매우 자연스럽다. 현실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사실성과 작가의 드라마적 상상이 균형감을 이뤘다. 10명이 되지 않는 적은 인물이 등장하고 공간도 제한적이지만, 긴박감이 넘쳤다.

넷플릭스 ‘인간수업’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박주현은 기대 이상의 뛰어난 연기력을 펼쳤다. 순진하고 귀여웠던 크리에이터 초창기부터, 어느덧 유명세에 거만함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20대를 물 흐르듯 표현했다.

트렁크에 갇힌 뒤부터는 이리저리 구르며 유나가 가진 분노와 공포, 두려움과 괴로움 등 부정적인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괴로움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어려울 수 있는 감정 연기를 과잉 없이 절제했다.

그외에도 김도윤과 정웅인, 김여진, 전석호, 하도권 등 실력파 배우들이 극의 임팩트를 채웠다. 분량과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빼어난 연기력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전석호와 김여진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카체이싱 장면에서 다소 느리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예산이 많았다면 훨씬 더 멋진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크리에이터를 대하는 팬들의 태도는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묘사했다. 현실에서도 적잖은 구독자들이 악성 댓글을 남기고 크리에이터를 조롱하지만, 반대로 크리에이터를 좋아하고 인간적으로 대하는 팬들도 많다. 온라인상의 대중을 너무 악하고 못된 존재로만 그리다보니 깊게 몰입하다가 덜컥 언짢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신선한 소재를 바탕으로 도로를 질주하듯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내달린다. 어설프게 회상 신을 넣어, 신파로 눈물을 자극하는 포인트도 없다.

현실을 살다 무의식적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을 남길 수 있는지에 대한 주제의식도 의미 있다.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작품이다. 한국영화계가 침체기를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능력 있는 젊은 창작자들이 적지 않다는 희망을 준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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