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배우 탕웨이와 김태용 감독은 2011년 영화 ‘만추’로 처음 만나 3년 뒤인 2014년 웨딩마치를 울렸다. 올해는 두 사람이 부부가 된지 10주년 되는 해다. 그간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던 두 사람이 다시 감독과 배우로 재회했다. 영화 ‘원더랜드’에서다. AI를 소재로 다양한 사랑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마치 두 사람의 사랑을 기념하는 듯 ‘원더랜드’가 5일 개봉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김태용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이 영화 전반에 녹아있는 가운데, 탕웨이가 깊이 있는 연기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탕웨이의 얼굴을 보다 보면 끝내 눈물이 흐른다. 김태용 감독은 “탕웨이는 현장에서도 집에서도 질문을 쏟아냈다. 쉬는 시간이 없었다. 24시간 일하는 기분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태용 감독 “로봇청소기와 대화하는 母보며 ‘원더랜드’ 영감 얻어”

김태용 감독은 지난 2016년 ‘원더랜드’의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AI가 상용화되기 전이었다. 가짜와 진짜 세계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기분을 느낀 김 감독은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사람을 AI로 만들면 어떨까?”란 호기심에서 ‘원더랜드’를 출발했다. 뇌과학자 김태식 카이스트 교수의 자문을 구해 AI를 파고 들었다. 극 중 인물들은 AI에게 감정을 느끼고, 사랑하고 분노한다.

“어떻게 보면 SNS도 허상이잖아요. 그 안에서 감정이 생기는 거죠. 제가 어머니께 로봇청소기를 선물한 순간을 잊지 못해요. 어머니가 로봇청소기와 대화를 하더라고요. ‘거긴 위험해’, ‘이리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AI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감정을 주고 싶은 주체인 인간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이야기가 탄생할 것 같았어요.”

아내이자 중화권 톱스타인 탕웨이를 비롯해 수지와 박보검, 정유미와 최우식, 탕준상, 최무성까지 주연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한 명만 얻어도 훌륭한 캐스팅인데, 엄청난 라인업을 꾸렸다.

“정말 다 주인공이잖아요. 저는 다양한 관계와 사랑을 보고 싶었어요. 영화가 이리 저리 움직인단 말이죠. 밸런스를 위해서 모두 스타이거나, 모두가 스타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했어야 했어요. 저와 제작자의 욕심으로 전원 스타로 모셨죠. 각각의 케이스가 존중받았으면 해요. 기대치가 커지는 게 두렵긴 한데, 균형이 맞춰지길 원했죠.”

아내인 배우 탕웨이는 ‘분당댁’이라는 애칭으로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동양적이면서 서구적인 미가 있는 외형과 기품이 느껴지는 내면, 의외의 순수함이 더 많은 사람을 이끈다. 김 감독 역시 오랜만에 탕웨이와 만났다. 더 성장한 탕웨이를 봤다고 했다.

“같이 있으면서 자극이 됐어요. 정말 열심히 준비하더라고요. 세트장에서도 질문하고 집에서도 질문하고. 24시간 일하는 느낌이었어요. 서로 지원을 해주면서 자극이 되니까 좋은 점이 더 많았죠. 탕웨이는 ‘만추’ 때보다 더 깊어졌어요.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캐릭터로 더 쓱 빨리 빠져 들어갔어요. 더 멋있는 배우가 됐더라고요.”

◇탕웨이 “현장에선 개구쟁이 김태용, 집에선 ‘딸바보’의 극치”

‘원더랜드’ 속 탕웨이가 연기한 바이리는 밝기만 하다. 늘 활짝 웃는다. 생전에 딸과 엄마에겐 보여준 적 없는 얼굴이다. 늘 일에 치여 살다 죽음을 앞두게 됐고, 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AI 서비스 원더랜드를 신청했다. 양 극단을 오가는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거의 휴대전화만 보고 연기했어요. 재밌었고, 어렵지 않았어요. 딸과 엄마 사이, 관계를 모두 성립했어요. 딸을 연기한 아이의 얼굴만 봐도 마음이 확 바뀌어요. 현장에서도 ‘탕웨이 마마’라며 제게 달려왔어요. 제 엄마 역을 한 니나 파오는 홍콩 최고의 배우예요. 그의 눈빛을 보면 사랑받는 느낌을 받아요. 옆에 있는 배우들 덕분에 편하게 연기했어요.”

죽은 사람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는 원더랜드 서비스는 사자(死者)를 만나는 것에 새로운 고민을 던져준다. “누군가는 절대 안할 것”이라고 하고, 혹자는 그리움 때문에라도 꼭 서비스를 신청하겠다고 했다. 탕웨이는 치료약이라고 했다.

“저는 이 서비스가 치료약이라 생각해요. 살아있는 사람이 그리운 사람과 소통하다보면, 어느덧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어요. 약효는 한계가 있잖아요.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면 그만둬야죠. 심리 치료제로 쓸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김 감독을 13년 만에 남편에서 감독으로 다시 만난 탕웨이는 존경심을 언급했다. 늘 강력한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김 감독에게 특별함을 느꼈다고 했다. 다만 아빠로서는 답답하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존경하는 감독님이에요. 감독님이 가진 따뜻한 감성은 언제나 좋아요. 현장에선 개구쟁이 같아요. 늘 새로운 걸 탐구해요. 남편으로서는 답답해요. ‘딸바보’의 극치예요.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요. 아빠가 딸을 너무 아껴서요. 저와 태용은 정말 끈끈해요. 화목하고요. 그 따뜻함이 영화에 녹은 것 같아요.” [email protected]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