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성적이 우수해 학비를 면제받는 학생을 장학생이라 부른다. 미디어 속 장학생들은 ‘장한 학생들’로 그려지곤 하지만 지난 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라키’ 속 장학생은 돈없는 가난한 계급으로 묘사된다.

드라마의 배경인 상위 0.01%가 재학중인 주신고교 속 장학생은 귀족에게 함부로 손을 대서도 말을 걸어서도 안된다.

귀족은 빨간색, 장학생은 남색 넥타이를 맨다. 파란색은 빨간색과 교류할 수 없다. 자칫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순수하게 상위 계급에 다가가기라도 하면 폭력이 돌아온다.

드라마는 주인공 강하(이채민 분)이 주신고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면서 시작한다. 친형 인한(김민철 분)의 사망으로 결원이 생기자 강하는 주신고에서 벌어지는 각종 비리와 음모를 캐기 위해 들어갔다.

김리안(김재원 분)이 권력의 정점인 것을 안 강하는 그의 여자 친구 정재이(노정의 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리안에게 화를 불러일으키며 균열을 낼 생각이었다. 하필 재이는 리안과 헤어지려는 상황이었다. 강하와 재이가 가깝게 지내게 되면서, 리안과 재이는 물론 조용하던 학교에도 균열이 커졌다. 그러면서 점점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진다.

드라마 제목인 ‘하이라키’는 계급을 뜻한다. 배경인 주신고는 교장은 학생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부를 기준으로 계급이 형성된 가상의 공간이다. 명예, 권력은 물론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배제됐다.

오직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드라마는 현실성보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많은 설정을 메웠다. 현실감을 원치 않는다면 반길만한 요소지만, 현실성을 중히 여긴다면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진실을 좇는 강하는 후반부 형의 죽음 전말을 알게 됐다.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암시하던 인물이 아닌 예상 밖의 인물이 범인이다. 왜 인한을 죽였는지 개연성이 부족하다. 아무리 자신이 위험에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죽는 것을 내버려두기란 쉽지 않은데, 범인은 느닷없이 인한의 죽음을 선택했다.

초반부터 계급 사회를 철저히 유지하는 리안이 후반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대목도 갑작스럽다. 어떤 사건을 통해 리안이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게 되는지 명확한 설명이 없다. 재이의 속내가 밝혀지는 대목도 앞부분 설정과 너무 큰 괴리가 있다.

무역회사 인터네셔널윤의 막내딸 헤라(지혜원 분)에게 시종일관 무례하게 대했던 정재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널 친구로 생각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톤을 바꿨다. 초반부터 헤라를 무시하고 못되게 대했던 설정과 대치된다.

부모의 부를 믿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고등학생에게 너무 많은 짐을 주려하지 않겠다는 의도 때문인지, 폭력을 방관하던 주인공들이 사죄 행렬을 이어갔다. 반면 넓은 시야를 가진 어른들이 죄의 중심에 섰다. 비교적 덜 자극적이고 따뜻한 엔딩으로 보이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건 막을 수 없다.

‘하이라키’는 신인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차가운 얼굴을 한 노정의나 멋과 기세가 가득한 강하 역의 이채민은 이야기를 잘 이끌어갔다. 틈이 크게 벌어진 개연성을 채울 정도는 아니지만, 두 배우의 집중력은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노정의는 불안과 두려움 등 어려운 감정을 정확히 풀어냈으며, tvN ‘일타스캔들’(2023)에서 좋은 연기를 펼친 이채민은 성장폭이 도드라졌다.

헤라 역의 지혜원은 보여줘야 할 게 많은 캐릭터란 점에서 숙제가 많았음에도 능숙히 잘 해냈다. 발랄하면서도 되바라지고, 인간미도 있어야 하는 복잡한 인물을 잘 해석한 듯 보인다. 우진 역의 이원정은 일상 연기가 자연스러웠다.

다만 리안 역의 김재원의 연기는 아쉬움을 남긴다. 엘리트에다 교내 최고 권력인 리안은 카리스마도 갖췄을 뿐 아니라 지고지순한 사랑도 있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결핍을 이겨내는 성장통도 있지만 이를 단편적으로 묘사하는데 그쳤다.

드라마는 귀족의 삶을 상상의 세계에서만 그려냈다. 비싼 외제차를 타고 명품으로 온 몸을 장식하고, 딥키스를 마다하지 않는 파티 등 화려한 볼거리에 너무 집중했다.

오롯이 부를 기준으로 힘의 크기를 규정한 세계관이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졌다. 선과 악의 경계가 너무 뚜렷하고 악인의 행동에는 딱히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인한의 죽음을 둘러싼 스릴러의 매력은 있으나, 답을 알고 난 뒤에는 너무 허무해진다. 교훈적인 메시지에 집착해서일까, 시원한 맛이 전달되지 않았다[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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